‘포르트-다’: 박지원의 그림-상자와 봉합의 장면들,
YK Presents, 2025
‘포르트-다’ 놀이
“(…) 어머니가 사망하고 며칠 뒤에, 로르―이 아이는 4 살이다―는 시체놀이를 한다. 자기보다 2살 위인 언니와 함께 로르는 침대시트를 놓고 다투는데, 로르는 이 침대시트로 자기를 감싸달라고 요구한다. 한편 로르는 자기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완수해야 하는 의례를 설명한다. 로르의 언니는 그 일을 수행하는데, 로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고함쳐 울기 시작한다. 로르는 다시 나타나고 언니를 안정시킨 다음에 이제는 언니에게 죽어 있으라고 요구한다. 로르는언니를 감싸는 침대시트가 움직이지 않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로르는 더 이상 침대시트를 정돈하는 것을 완수할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울음의 고함소리가 갑자기 웃음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기쁨의 몸부림으로 침대시트를 비트는 그런 웃음. 수의였던 그 침대시트는 가운이 되고, 집이 되고, 나무 꼭대기에 꽂힌 깃발이 된다. 결국 침대시트는 멈추지 않는 춤과 함께 찢겨지고 그 위에는 로르가 뱃속을 파내 죽은 토끼 털 인형이 있다.”1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피에르 페디다(Pierre Fédida)가 ‘부재’의 주제 아래 서술한, 두 아이가 침대시트를 매개로 벌이는 울고 웃는 놀이의 장면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개념 중 하나인 ‘포르트-다(Fort-Da)’ 놀이와 이어진다. 프로이트는 그의 손주가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실뭉치를 두고 혼자 반복해 벌이는 놀이 장면을 보며 이 개념을 구상한다. ‘없다’를 의미하는 ‘포르트(fort)’와 ‘있다’를 의미하는 ‘다(da)’가 합쳐진 ‘포르트-다’ 놀이는 아기가 엄마의 부재 중에 홀로 실뭉치를 가지고 놀며 실을 저멀리 던져 없앴다가 다시 자신 앞으로 끌어오는 행위, 곧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행동 중 아이의 마음에 슬픔과 기쁨이 무한히 오가는 감정 상태를 포착한다. 유년기 엄마와의 분리 불안으로 발생된 아이의 놀이는 불안에서 쾌락으로 변모하고, 프로이트는 이를 경유해 부재와 현존, 불안과 쾌락 사이의 양가감정을 발견하며 이 장면을 ‘포르타-다’ 놀이로 개념화한다. 앞서 페디다가 언급한 소녀 ‘로르’가 언니와 벌이는 놀이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발견된다. 불안과 쾌락이라는 원초적이고도 근원적인 두 감정이 짐짓 단순해 보이는 침대시트를 두고 벌이는 놀이 가운데 ‘포르트-다’로 나타난다.
상자들: 열어주길 기다리며 봉해진 마음
그렇다면 ‘포르트-다’ 놀이와 박지원의 작업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회화를 주 매체로 다루는 박지원은 그의 첫 개인전 ≪Surgically Yours≫에서 그림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 조금 다른 시도를 감행해 본다. 작가는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상자들 안에 그림을 그려 담고, 관객 앞에 열어 보인다. 박지원은 왜 상자를 경유해 그림을 보여주려 할까? 작가가 상자에 품은 관심, 나아가 이 상자가 작업의 영역으로 확장되기까지 지난 시간을 되짚다 보면 그가 할아버지의 임종을 마주하던 장면 앞에 멈춰선다. 미동없이 굳은 몸, 숨을 다한 할아버지의 얼굴이 이윽고 하얀 붕대에 감싸여 덮이는 순간, 그 가리워진 신체가 관으로 옮겨져 영영 닫히는 장면을 목도한 박지원은 슬픔의 감정을 넘어선 불안과 충동이 뒤엉킨 기이한 감정을 경험한다. “저 돌돌 말린 흰 천 안에 할아버지가 진짜 있는 게 맞을까? 저 관 안에 든 게 할아버지의 몸이 아니면 어쩌지?”와 같은 의문에 가까운 궁금증이 박지원의 머릿속을 파고든다. 어떤 존재와의 영원한 멀어짐, 죽음과 삶의 경계가 한 존재 앞에 들이닥치는 순간 현실은 오히려 비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삶의 양식이 죽음으로 바뀔 때, 그 존재는 신체를 넘어선 하나의 사건이 되어 다른 존재들 앞에 재등장한다. 박지원은 앞서 경험한 기이한 현실 감각과 머릿속에 이는 물음들을 일련의 ‘그림-상자’ 작업으로 풀어낸다. 그렇게 자신의 이미지 안에서 상상 속 붕대를 풀었다 다시 감고, 마찬가지로 상상의 관을 열고 닫기를 반복한다.
한편, 박지원의 ‘그림-상자’는 할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된 이야기 너머로도 가지를 뻗어 나간다. 작가는 상자가 가진 존재감 그 자체에 매혹된다. 시각적으로 눈을 사로잡는 저마다의 상자가 가진 아름다움, 그 직관적인 이끌림을 따라서 여러 루트로 상자들을 구매한다.(개중에는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상자도 있다.) 각기 다른 나라/도시에서, 다른 누군가의 장소 한 켠에 놓여, 제각각의 색·크기·모양·장식을 지니고서, 다른 시간대를 보내며 세월을 가득 머금은 상자들은 박지원의 손길을 따라 지금 이곳에 그림을 담는 용도로 놓인다. 박지원이 생각하기에, 제각각의 외양을 가진 상자들은 저마다의 캔버스 천이 갖는 특질에 따라 그에 걸맞는 그림을 그리게 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각 상자를 저마다의 새로운 틀로 받아들이며 그에 걸맞는 그림들을 그려 넣는다고 말한다. 작가에게 주어진 상자는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틀이자 조건이 되어 형상을 불러들인다. 다른 한편, 벽에 걸리는 그림들과 달리 상자에 담기는 그림은 열고 닫을 수 있다는 특징을 추가적으로 갖는다. 박지원은 상자를 경유해, 그간 작업에서 이미지를 다룰 때 제어하거나 삼켜내곤 했던 사실적인 형상들을 보다 가뿐한 마음으로 그려낸다. 상자가 지닌 닫히는, 담기는, 내용물을 품어 보호하는 기능은 작가 앞에 묵직하게 놓였던 심리적 걸림돌 하나를 제거한다. 박지원은 돌이 치워진 자리 한 켠에 상자를 두고, 누군가 열어주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림을 봉해 두었다.
Surgically Yours,
그런가 하면, 박지원의 작업 전반에는 사후적인 뉘앙스가 풍긴다. 작가는 곧잘 그림이 가진 사후성에 대해 곱씹는데, 그게 그에게 알맞고 편안한 방식이기에 그렇다. 미술사의 맨끝이 시작점이 되는 동시대 화가에게 주어진 조건이자 환경이 박지원에게는 지난한 과거, 사건, 감정들을 잘 선별해 봉합하는 역할을 맡은 수술대 위 의사의 심경으로 다가오곤 한다. 앞선 모든 그림의 역사를 토대로 이를 참조·조정·재조합하고, 알레고리로 치환하거나 상징으로 대체하는, 역사의 특정 측면을 불러들여 현재적 이미지와 봉합하는 방식은 지금의 화가가 하는 일의 일종이기도 하다. 그리고 박지원은 앞선 비유적 의미로써의 봉합 너머, 실제 회화의 표면에서 봉합의 일을 벌인다. 그는 입안의 상처들을 꿰매고, 이를 발치하거나 교정하고, 등뼈를 맞추는 등의 장면을 실제로 그림 속에 그려 넣는다. 이는 <날카로운 입 안>(2025), <입 안의 아킬레스건>(2025), <자라나는 이빨 줄기>(2025), <등뼈 묶어주기>(2025), <발치 상자>(2025), <매일을 위한 변신 키트>(2025)로 재현된다.
박지원이 그림으로 수행하는 일련의 봉합은 회화사를 바라보는 작가적 시선일 뿐 아니라, 한 존재의 상처 앞에서 기묘한 애정과 치료법으로 고통을 해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는 전시 제목과도 연결되는데, ‘Surgically Yours’는 보통 편지나 메일의 마지막 줄에 애정을 담은 관용구로 붙이는 ‘Sincerely Yours’를 작가가 변형해 이름 지은 것이다. 이 어구에는 작가의 애정 어린 마음과 섬뜩하고 발칙한 마음이 공존한다. “많이 아팠지, 이제 괜찮아 질거야”가 하나의 태도라면, 그 맞은 편에는 <킬러 토끼>(2025), <마망의 궁술>(2025)의 이미지로 암시되는 존재를 옥죄는 뾰족한 화살과 창살, 날카로운 공격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처럼 박지원이 그림 속에서 외부 공격으로부터 알을 지켜 보호하고, 고통 가운데 예쁜 리본을 묶어 장식을 더하는 일은 ‘공격/보호', ‘고통/쾌락’의 양가적인 태도를 두고 벌이는 아이러니이자 딜레마로 여겨진다. 앞서 소녀 ‘로르’와 언니가 침대시트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역할놀이 중 현존과 부재가 어른거리는 방식, 그리고 놀이를 매개하는 원초적이고도 양가적인 감정과 유사하게, 박지원은 그림을 두고 이같은 근원적 딜레마와 아이러니를 다룬다. 글의 도입부 인용 문장으로 되돌아가, “결국 침대시트는 멈추지 않는 춤과 함께 찢겨지고 그 위에는 로르가 뱃속을 파내 죽은 토끼 털 인형이 있다.”2 로르가 토끼의 배를 가르고, 죽은 토끼 앞에서도 꺄르르 웃을 수 있는 이유는 토끼가 인형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토끼의 배는 봉합 가능하고, 다시 로르와 놀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림이기에 괜찮은 일들이 있다. 그림이기에 가능한 봉합들이 있다. 어떤 사건의 이후, 우리가 사후적으로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살아 있기에 상자를 열고 닫을 수 있고, 상자 속 무언가를 이따금 상상할 수 있고, 아픈 상처를 봉합할 수 있으며, 사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에 ‘포르트(없다)’에서 마침표로 끝나지 않을 ‘다(있다)’를 말할 수 있다, 그릴 수 있다.
1. 피에르 페디다(Pierre Fédida), 『부재 L Absence, p. 138. (번역: 정지은)
2. 앞의 글 재인용.
글: 이상엽(독립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