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therwordly, Ranee Seoul, 2025
김서현과 박지원의 작업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색감과 질감의 뚜렷한 상이함이다. 하나는 외피가 덮인 듯 보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를 선명하게 열어젖힌 듯하다. 회화의 인상은 이처럼 서로 다르지만, 두 작가의 작업은 평면이라는 매체 안에서 기억과 상상을 매개로 입체적인시공간을 결속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때의 기억과 상상은 본인이 실제로 겪거나, 직접 보고 들었는지의 여부를 가볍게 무력화하는 성질을 지닌다. 두 작가는 신체와 그 신체를 둘러싼 풍경과 조건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서도 과거의 장면, 상징, 기법, 기록 형식 등을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불러온다. 각자가 목격했거나, 그와 함께 엉뚱하게 상상하게 된 과거는 은유, 모방, 변용을 거쳐 현재의 이형적인 몸과 물질로 다시 형태를 갖춘다. 또한 인장, 상자, 주머니, 두둑이 올린 레진 등 크고 작은 조형적 장치를 통해 이질적인 감각을 유도한다.이러한 장치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 속해 있던 것이 현실로 튕겨 나오는 순간처럼, 익숙한 장면들을 낯설게 조율하고 배치한다.
표면적, 방법론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김서현과 박지원의 작업을 연결하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두 작가 모두 자신의 작품을 매개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잔상을 남기고자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세계란 내적 세계, 과거와 꿈의 세계, 종교적 장면의 세계, 신체 깊숙한 곳에서부터 반응하고 감응하게 되는 세계를 포괄하며, 김서현과 박지원 모두 해당 세계들의 모호함 속에 깃든 신비성에 깊이 천착한다. 더불어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 표현 방식에서는 두 작가가 서로 다른 길을 떠나지만, 그 중간 혹은 끝에서 과거의 파편을 현재의 어딘가에 얼리거나 결박하는 식으로 고정한다는 지점에서 둘은 다시 만난다.
Seohyun Kim (b. 1999)
김서현의 작품에서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반투명한 표면은 마치 오랜 시간이 쌓여 희뿌옇게 변한 껍질이나 먼지 섞인 안개가 낀 창의 표면처럼 보인다. 껍질과 창문 모두 그 너머에 무언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가 완성한 이미지의 전체는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구체적인 인물과 이야기에 따른 흐름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에는 편지,시계, 열쇠와 같은 소재가 전면에 등장하기도 하고, 두텁게 김이 서린 창문 뒤로 눈이나 귀가 마치 환영처럼 흐릿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림을 감싸듯 얹어진 파라핀과 레진은 그 그림의 혼탁한 피부를 형성한다. 이 의도된 혼탁함과 함께 중간 중간 뾰족하고 건조하게 튀어오르는 질감은 보는 이에게 조금 더 날카롭게 가닿는다. 이러한 표면은 그림의 내부와 외부와 온도 차이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그림이 보는 이의 쪽으로 신호를 보내듯 입체적인 구석들이 산발적으로 돌출되어 있다. 라니 서울의 지상층과 지하층 사이, 일종의 과도기적 공간에 놓인<눈부실 때 가리는 것>(2025)은 작가가 자신의 신체에 관해 찾은 새로운 이해를 담고 있다. 이동이나 빛에 의해 환경이 바뀔 때, 그는 자신의 눈이 그것을 깊이 감각한다는 점을 인지한다. 변화나 강한 빛으로부터 자신의 눈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가릴 수 있는 것, 그래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들을 탐색해왔다. 눈을 보호하는 생활 습관,흐린 날씨를 좋아한다는 사실, 사진기를 통해 세계를 다시 보려고 하는 습관, 조명과 색에 대한 그의 잦은 반응은 단순히 선호도의 문제가 아닌 빛과 색에 대한 눈의 민감도라는 사실을 그는 새롭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지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면면을 멈춰 고정시키고자 한 작업으로서 <눈부실 때 가리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이해가 그 다음 단계로 이행하게 되는 지점을 입체적으로 응축한 부산물이기도 하다.
Jiwon Park (b. 2001)
박지원의 작품은 어떤 대상의 내부와 그것을 이루는 기본 단위의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처럼 보인다.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소재를 선명하고 환하게 밝히고 또 그것을 열어젖힌다. 투명하고 맑은 파랑,핑크, 초록, 주황 등의 색을 사용하면서 이와 강한 대비를 이루는 색채를 병치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선명하게 건넨다. 그가 불을 밝히듯 색을 사용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려는 방식은, 그림 속 대상들이 외피를 투과해 도달할 수 있는 깊은 내면의 구조와 연결된다. 별들로 수놓인 푸른 천장을 배경으로 한 작품 <갈비를 더듬던 손>(2025)에는 새벽 어스름 속에서 보는 것처럼 흰 갈비뼈가 화면 중앙에 등장한다.그리고 그 갈비를 매만지는 손이 전면에 나타나고, 이 손에는 푸르게 흰 꽃이 들려져 있다. 작가는 성경에 등장하는 이브의 탄생 일화,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창조되었다는 이야기의 기이함에서 출발해 갈비뼈를 드러내고 더듬고 다시 ‘창조’하는 장면을 구성했다. 박지원이 그리는 이브 혹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존재의 갈비뼈는 리본, 별, 꽃, 새,그리고 푹신한 짚처럼 보이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열어젖혀진상태이지만 무엇인가를 노출시키기보다는 점잖은 존재들과 이리저리 얽혀 군집을 이룬 모습이다.
내부 깊숙한 것을 만지는 느낌, 그것을 방해 없이 바라보고 싶다는 감각은 <네 마음을 보여줘!>(2025)와 <아르고스의 눈>(2025)에서도 감지된다. 눈과 심장이라는 신체 기관을 해부하여 보여주는 박지원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해체적이기보다는 이질적인 요소들의 만남과 구성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기며, 그로테스크함보다는 명랑함이 중심 정서로 작동한다. 또한 박지원의 여러 그림 속 가장자리에 보이는 체크보드 패턴, 정면과는 다른 측면의 색, 동물과 자연의 이미지, 그리고 고대의 회화와 건물 외곽에서 볼법한 작은 인물 형상들은 모두 과거가 현재에 이식된 상징들로, 작품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글: 임서진